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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공개 특강 6. 나만의 눈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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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관리자 | 조회 890 | 2015-09-2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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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교수의 글쓰기, 당신도 시작하라】⑥ 나만의 눈으로 관찰하고
음미한다
독특한 나만의 관점 써야 흥미롭게 읽혀







2013년 05월 30일 (목) 12:15:46 김원용 kimwy@jjan.kr
△이별·소중한 사랑

리별은 美의創造입니다 / 리별의 美는 아츰의
바탕(質)업는 黃金과 밤의 올(絲)업는 검은비단과 죽엄업는 永遠의生命과 시들지안는 하늘의 푸른꼿에도 업습니다 / 님이어 리별이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엇다가 우슴에서 다시사러날 수가 업습니다 오오 리별이어 / 美는 리별의創造입니다 (한용운, 〈리별은 美의創造〉
전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세상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별'이란다. 창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미 그 이상이란다. 아름다움 그 자체이고, 목숨처럼 소중하단다.

이별이 슬프지
않고 아름답다니, 게다가 목숨처럼 소중하다니, 이건 또 무슨 궤변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이 시를 읽는 맛은 그런 데서 시작된다.


만해는 '이별'을 '깨달음의 원천'으로 보았다. 곁에 있을 때는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는데 그걸 깨닫게 해 준 것이 바로 이별라고 본 것이다. 어떤 대상이든 사건이든 관념이든 이처럼 독창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쓴 글이어야 읽는 이에게 새로운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누구의 눈에나 그렇게 보이는 건 글의 내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선생님들의 열성적인 가르침으로 그동안 훌륭한 선배들도 많이
배출했다. 그 선배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 학교는 교장 선생님 이하 많은 선생님들께서 학생지도에 열과
성을 다하고 계신다. 재학생 모두는 우리 학교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아 저마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를 소개하고 있는 이 글은 과연 읽을 만한가. 어쩌면 고개가 저절로 갸웃거려질지도 모른다. 이 글의
내용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 자긍심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부모·선생님·친구

어느 백일장에서 '소중한 사람'이라는 글감이 주어졌다. 자, 이제 글을 쓰려면 당연히 자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많은 지식을 주시고
내가 엇나가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타일러주신 선생님, 부모님이나 선생님 대신 함께 고민하면서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던 친구들의 모습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래서 이 셋을 모두 쓰기로 하고, 우선 부모님에 대해 이렇게 썼다.

누구나 똑같겠지만 내 부모님은 나를 애지중지하시면서
키우셨다. 내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셨고, 말도 안 되는 고민도 다 들어주셨다. 중학교 때 사춘기가 찾아와서 내가 짜증을
부릴 때도 엄마와 아빠는 약속이나 하신 듯 웃음으로 넘기시며 우리 딸이 그래도 최고라고 말씀해주시곤 했다. 부모님은 지금도 나를 걱정하시는
마음이 지극하시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언젠가는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자, 어떤가. 이 글을 읽어서 새롭게 얻을 만한 것이 과연 있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까닭은 이렇다.


세상에 자식을 애지중지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자식 걱정 안 하는 부모는 세상에 또 어디 있으며, 그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마음먹는
거야 자식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하긴 맨 앞에 '누구나 똑같겠지만'이라고 쓰긴 했다.

읽는 이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글감/제목을 대하는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앞서 본 글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들에서 별로 벗어난 게 없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쓴 어느 여고생의 글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날 '나'는 선생님과 함께 근처의 보육시설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그곳에 사는 '오빠' 한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런데
'나'가 눈길을 몇 번이나 주었는데도 그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기로 결심하지만 수행평가
점수 때문에 일주일 뒤 그곳을 또 방문하게 된다.

그제야 '나'는 그 '오빠'가 청맹과니(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눈/사람)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빠'를 오해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 '나'는 그 오빠에게 다가가 그와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앞을 전혀 못 보는데도 세상을 향한 '오빠'의 마음의 눈은 '나'보다 훨씬 밝았던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이렇게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오빠의 말에 '나'는 온갖 불만투성이로 살고 있는 자신을 깊이 반성하게
된다. '나'로 하여금 세상을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그 '오빠'야말로 요즘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내용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체험을 살려 쓴 글이다. '청맹과니 오빠'라는 글감도 잘 끌어들였다. 자신의 순간적인 실수와 요즘 자신의 생활상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도 돋보인다. 무엇보다 '오빠'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작중화자의 마음이 읽는 이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독창적 생각과 느낌

대상이나 이야기를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글에서 써야
하는 것은 내가 겪은 것 자체가 아니라 내가 겪었으되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나만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소중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때 '부모님', '선생님', '친구' 모두 사실은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누구나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관점에서의 그들이 아니라면 그렇다.

'나'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부모님의 특수한 처지나 상황 혹은 나와의
관계, 소설 〈완득이〉의 담임 '똥주'와 같이 상식에서 벗어난 어떤 선생님의 독특한 교육방식이나 철학 등을 발견해서 쓰라는 말이다.


사실 모든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살아왔고 살아가며 보내는 시간과 시간들의 모든 경험은 글감이 될
수 있다. 앞서 글감을 가까운 곳에서 찾으라고 했던 것도 그런 뜻에서다.

물론 여러 가지 일을 많이 체험하면 그만큼 많은 글감이
내면에 쌓이는 건 사실이다. 시대와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견디며 기구하게 살아왔다면 그 자체가 좋은 글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게 모두
글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런 체험에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이나 느낌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는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 중 아무리 사소하고 초라하며 남루한 사물이나 사건이라도 있는 그대로만 바라[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말자. 거기에 가끔은 삐딱한
눈길과 배배꼬인 마음길을 주기도 하자. 그걸 함부로 뒤집어도 보고, 세워도 보고, 엎어놓고도 보자.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다음 달달 볶으면서도
보기를 멈추지 말자.

그러면 예기치 않은 데서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과 느낌이 정월 대보름달처럼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걸
글감으로 포획하자. 송준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가, 글쓰기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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