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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공개 특강 7. 항상 외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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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관리자 | 조회 1325 | 2015-09-2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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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 송준호 교수의 글쓰기, 당신도
시작하라
























7. 항상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당신
"지금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도 훌륭한 글감"







2013년 06월 06일 (목) 22:06:36 기고 desk@jjan.kr
△고독 혹은 쓸쓸함

누구나 지축 위에

홀로 서
있나니

햇살 한 줄기 뻗쳤는가 하면

어느덧 황혼이 깃든다

살바토레 콰시모도, 〈황혼이 깃들고〉
전문

우리들 각자는 세상의 지축/중심에 서 있으되, 이처럼 '누구나' 항상 '홀로 서 있'다. 어디 그뿐인가. 햇살이 머무는 시간은
언제나 짧고, 어느덧 깃드는 황혼처럼 우리의 삶/인생 또한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느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새근새근 잘 자던 아기가 갑자기 울음을 자지러지게 터트린다. 장난감 가게에서 유치원생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고, 남루한 옷차림의 엄마는 철없는 아들에게 망연한 눈길을 주다 말고 한숨을 푹푹 내쉰다. 중간고사가 있는 날인데 시험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아서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무엇 때문에 자지러지게 울고, 떼를 쓰고, 한숨을 쉬며, 발걸음이
무거운가.

짝사랑하던 국어선생님의 결혼 소식을 듣고 사흘이나 무단결석을 한다.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없는 걸 발견하고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린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다. 사업실패를 비관한 남자가 한강다리에서 몸을 던진다.
자, 또 묻는다. 무엇 때문에 무단결석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광장에 모이고, 한강에 몸을 던지는 것인가.

외로워서다. 앞서 예를
든 갖가지 행동을 하게 만든 원인으로서 그 '무엇'을 하나로 묶는 말이 바로 '외로움'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워서 울고, 깊은 한숨을
쉬며, 외로워서 슬픔에 잠긴다. 때로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자신을 외롭게 만든 그 어떤 것에 온몸으로 항거하기도 한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 또한 외로움이 극단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도대체 '외로움'은 무엇인가. '외로움'이란 본디 '홀로 있는 듯이 쓸쓸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홀로 있다니, 사람이란 본디 홀로인 존재 아닌가.

그렇다. 사람이란 늘 혼자여서 고독한 존재다. 곁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도 우리는 결국 누구나 혼자고 그래서 시시각각으로 외로움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이 '외로움'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런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나다. '나' 자신이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물론 소중하지만
'나'보다 더할 수는 없다(그들은 어디까지나 '나'가 소중하게 인지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심지어 '나'가 당장 사라진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잘만 돌아간다. 결국 '나'가 제일
소중하므로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나'가 성취하려는 것들도 모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 속에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간절히 소망하면서 발버둥을 쳐도 '나'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바라는 만큼에 턱없이 모자란다. 당연하다.
세상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또 다른 나'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대와 달리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지도 않고,
세상과 하나일 수도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 '나'와 세상은 하나가 아니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인식 혹은 그렇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외로움'이고 '고독'인 것이다. 그건 각자의 낭만적 바람과 사실적 좌절의 괴리에서 비롯된 감정의 일종이기도 하다.


'낭만'과 '사실'은 무엇인가. 비유컨대 '낭만'이 술꾼들의 저녁 술자리를 지배한다면 '사실'은 다음날 으레 닥쳐오게 마련인
신체와 정신의 고통 같은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러므로 '사실'은 모든 외로움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비교해보자.

친구든 선후배든 죽이 잘 맞아 돌아가는 이들과 어울려 차수와 주종을 바꿔가며 새벽이 당도하도록 부어라 마셔라 한다.
과음으로 건강이 나빠진다든가,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는다고 부아가 난 마누라의 배배 꼬인 심사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다. 다음날 첫 시간 강의가
있다는 것쯤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다. 마셔서 즐거운 개인의 감정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자유로운 공상의 세계를 둥실둥실 떠다닌다. 바로 낭만적
철없음의 시간이다.

전날의 숙취 때문에 속이 쓰리고 둔기에 찍힌 듯 뒷골이 쩍쩍 갈라지는 사실적 고통의 시간이 바야흐로 도래한다.
그놈의 술 때문에 내가 못 살아, 못 살아를 연발하는 마누라의 잔소리는 숙취의 고통에 염장을 지른다. 결국 첫 시간 강의를 휴강 처리한 일로
술꾼의 착하디착한 심기는 두통보다 더하다. 어젯밤의 그 자유분방했던 상상의 날개는 맥없이 꺾인다. 급기야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내가 다시 술을
먹으면 성을 바꾼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사실적 아픔과 후회의 시간이다.

세상이 낭만적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나를 외롭게 만드는 '사실'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살아 있는 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아픈 삶의 무게

'외로움'은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 분야의 핵심이
되는 주제다. 예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게 사람의 삶인데, 이 외로움이 바로 사람이라는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크든 작든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지내는 날이 하루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시시각각으로 찾아오는
외로움에 때로는 맞서 싸우기도 하고, 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위해 고민도 하고, 또 때로는/대부분의 경우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그걸
순순히 받아들인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고, 박인환은 그의 〈목마와 숙녀〉에서 읊조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떠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쓸쓸한 인생이고 사람살이인 것이다.

물론 이 외로움의 감정은 미래의
방향을 정해주어서 하루하루 고단한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이 경우 각자 느끼는 외로움이 지독할수록 삶의 방향도 확고해진다.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감을 찾아내는 좋은 방법이 여기 있다.
우선 과거에 나를 외롭게 만들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요즘 나를 외롭게 만드는 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람이든
주어진 현실이든 뭐든 나를 힘들게/외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면 그것이 바로 훌륭한 글감이 되고 주제도 된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제를 먼저 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글에서 주제는 전체 이야기를 통일성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주제를 앞세우면 글쓰기는 시작조차 어렵다. 거기에 딱 들어맞는 글감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그렇게 쓴 글은 억지로 짜 맞춘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다.

이제부터는 글감이 될 만한 이야기부터 찾아보자. 바로 '나를 외롭게 하는 것들'이다. 지금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
나를 힘겹게 만드는 것들, 내가 불만을 갖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첫눈이 펑펑 쏟아져서 친구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니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다면서 다음에 만나자고 하지 않았는가. 새벽에 일어나 밥상을 차렸는데 남편과 아이들이 입맛이 없다며
밥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하고 집을 나갔는가. 그래서 기분을 잡쳤고 또 속이 부글부글 끓는가.

그걸 쓰면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만의 삶의 모습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소설가, 글쓰기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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